최근 ‘내 사업’에 대한 꿈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비즈니스 이야기를 처음 시작할 무렵 내 주변 사람들은 당황했어요. 저와 너무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도 그럴게 저는 정치와 철학, 사상을 술안주삼았을 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2년전까지만 해도 정치인으로서의 커리어를 꿈꿨을 정도였고요.
정치인으로서의 꿈
대학을 졸업하고 입대하기 전에는 선거법 개정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운좋게도 국민 정서가 극에 달할 때 태풍의 눈 안에서 변화의 흐름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좋지는 못했습니다. 선거법 개정안은 2019년 패스트트랙에 올라 통과되었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아주 미미했고 개정된 선거법은 유실무명할 뿐이었습니다.
허탈했습니다. 저는 선거가 정치적 의사결정의 출발점이고 민주주의의 구심점이라 생각하여 선거법 개정운동이 의미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여야 정당들과 협상하면서 힘의 역학관계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작용하는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사실 제게 정치는 수단이었고, 제가 바라보는 목표는 사회 변화에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접하고 나서, 세상에 존재하는 불행의 총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사회가 하나의 틀이고 사람들이 그 틀을 채우는 무수한 점들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행동할 수 있는 틀의 모양과 크기를 결정하는 게 정치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선거는 더 많은 사회문제가 정치영역에서 대표성을 갖게 하고, 더 효과적으로 논의되고 해결되도록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회색
현실 정치를 몸소 경험하고 변한 게 있다면, ‘세상이 회색으로 보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정치는 진보와 보수라는 두 개의 이지선다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 둘은 칼로 두부 썰듯 나눠지지 않습니다. 진보와 보수는 스펙트럼이고, 모든 진보가 다 같은 진보는 아니며, 동일하게 모든 보수가 다 같은 보수가 아닙니다.
똑같이, 세상의 모든 일에 있어서 옳거나 그른 것 혹은 착하거나 나쁜 것은 없습니다. 모두 장단점과 득실이 명확하고, 단지 상황에 따라 우열이 다를 뿐입니다. 이에 대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정답은 없습니다. 그래서 제 눈에 비치는 세상에는 단지 가치라고 믿는 것을 고집하는 주체들의 투쟁만이 남아버렸습니다.
변화
두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나는 목표에 대한 변화입니다. 개인의 욕망과 결부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라고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해소하고 싶은 불행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불행입니다. 그리고 다양성의 가치가 여기에 직접적으로 태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는 제가 믿는 가치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수단의 변화입니다. 정치는 제가 생각했던 것 만큼 효율적이지 않았습니다. 결과에 대한 파급력이 막강한 만큼, 동반되는 권력이 강력했고, 강력함의 정도만큼 이를 갈구하는 세력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목격한 정치는 탐욕이 넘치고, 과정은 복잡하며 이해관계는 무수히 산재했습니다. 여기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고, 저는 제 삶을 여기에 소모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회가 하나의 틀이고 이 틀을 채우는 무수한 점들이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정치는 틀의 모양과 크기를 결정하는 힘입니다. 그렇다면 그것만이 이 점들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방법일까요? 점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바꿀 수는 없을까요? 저는 우리 사회에 이러한 힘이 존재하며, 이것이 시장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장의 영역으로 나아가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위버멘쉬(Übermensch)
이 이야기를 했을 때 팀의 동료는 니체의 위버멘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니체에 의하면 사람은 낙타와 사자, 어린이의 세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낙타는 등에 업은 사람이 이끄는 데로 짐을 싣고 사막을 건너듯 순응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자는 이러한 강압에 맞서 반항하고 투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자의 행동이 향하는 방향에 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자는 그저 불평하고 반항만할 뿐입니다. 마지막 단계인 어린이는 삶을 놀이로 인지하고 즐기는 사람을 의미하는데요. 이러한 사람은 자신만의 관점을 통해 삶을 긍정하며 가치를 만들어 나갑니다(위버멘쉬). 낙타는 판단을 하지 않고, 사자는 객관적인 판단을 추구한다며, 어린이는 주관적인 가치판단만을 하는 셈입니다.
저는 결국 긴 시간을 거쳐 세상을 제가 보고 싶은대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사람답지 못하게 하는 불행을 줄이고 싶습니다. 이상에 가까울지라도 이상을 목표에 두고 전진하려 합니다.
사실 '내 사업'을 통해 이 목표를 이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사업은 '제 성격상 안하고는 못베길 것 같다' 정도이고요. 제가 사명감을 갖는 건 단순 사업은 아닙니다. 저는 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도록 더 근본적인 레벨에 자리잡은 문제에 집중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제 관점을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닌 시장으로 늘 확장시켜줍니다. 그래서 요즘은 시장을 근본부터 뒤바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블랙록이 쏳아올린 ESG는 그런 제게 있어 작은 희망이자 해결의 출발점인데요. 이 뒤의 이야기는 저의 가설이니 궁금하신 분들은 제게 커피챗을 요청해주시면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