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시력을 잃게 되면 우리 삶은 어떻게 변할까? 인간은 오감 중 시각에 가장 크게 의존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기존에 누리던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고 상상해볼 수 있다. 앞을 볼 수 없어 일상생활이 불편해지기 때문이 아니다. 생활이 단지 ‘불편’해지는 정도는 결과의 아주 단편적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미디어에서 사람들이 눈을 가리고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을 맞추는 게임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오인에서 비롯한 출연자들의 생뚱맞은 답변이나 겁에 질리는 모습은 시청자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다. 비록 청중에게는 재밌을지 몰라도 비슷한 경험을 해본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여간 곤혹스럽고 두려운, 무력함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소리를 들어보더라도 사물을 정확히 분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앞을 보던 사람의 눈이 먼다는 건 그 어떤 것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할 거라고 할 수 있겠다. 사물을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는 능력, 즉 사물에 관한 주관을 갖추는 능력이 저해되기 때문이다.
호세 사라마구José Saramago는 <눈먼 자들의 도시Blindness>를 통해 이 곤혹스러운 상상을 극도로 확장한다. 이야기는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서 실명 증상이 퍼지며 시작되고, 한 여인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설정은 흥미로워 보일지라도 이러한 세상의 모습이란 생각보다 흥미롭지 못하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자신의 주관이 미덥지 못한 세상은 그야말로 폭력과 무질서, 그리고 똥오줌이 곳곳에 자리 잡는 아비규환이 된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교훈은 똥오줌이 상당한 문제라는 점이다!).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을 때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는다. 내 몸은 내가 건사해야 한다는 듯 이기주의와 폭력으로 무장하여 ‘자신’이라는 경계 밖의 일은 냉소로 대한다. 이 아비규환 속에 대화는 없고 개인과 집단은 분열하며 도덕과 가치관, 인간성은 붕괴한다.
참으로 극적이고 암담한 모습이지만 문장을 읽어내려가면서 오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 확산이 장기화하고 더는 방역이 따라잡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우리 또한 각자도생의 조짐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정부와 시스템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해 서로에 대한 비난, 심지어는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구별해 권리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제안까지 등장하면서 경악을 금치 않을 수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가 점점 더 각박해지는 사회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할까. 다행히 이에 관한 해답 또한 사라마구로부터 엿볼 수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의사의 아내는 유일하게 시력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나약한 여성이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존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타인에 대한 책임감을 받아들이고 희생과 헌신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다. 동시에 눈이 먼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서로의 고통과 기쁨, 슬픔을 나누는 인간미를 보여주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의 관계는 상통하면서 연대로 거듭난다. 이런 연대의 의식에서 비롯한 것일까? 검은색 안경을 쓴 여자는 눈이 보이게 되고 난 이후에도 보잘것없는 대머리의 노인을 사랑하기로 한다.
소설은 결국 소설이다. 코로나는 <눈먼 자들의 도시>의 실명처럼 강력하지도, 사람들의 이성을 날려버리고 시스템을 단숨에 붕괴시킬 수 있을 만큼 극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소설의 전개를 두고 한 번쯤은 우리가 처한 상황에 빗대어 생각해볼 만한 것 같다. 현재 이미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빼앗길 수도 있을 만큼 거대한 위협 아래 놓여있고, 우리는 연대하는 대신에 각자도생의 길로 분열하고 있다. 이처럼 갈수록 혼탁해지는 세상에서 단순히 가진 것을 넘어, 우리는 아직 인간으로 남아있을까.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에는 뭐가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