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이라는 부자연스러움에 관한 고찰
최근 협업을 진득하게 하고 있다. 협업이라고 쓰지만 진행하는 방식은 거의 팀플에 가깝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면 마주보고 앉아 업무의 방향을 정하고, 정해진 기한이 다가오면 각자 맡은 업무의 결과물과 함께 그간의 고민을 공유하고, 의사결정으로까지 이어진다. 팀플을 겪어본 이라면 이해할 수 있듯, 이 간단해보이는 과정 안에서는 돌발상황을 포함해 정말로 많은 일이 일어난다. 협업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협업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할 때 더욱 어려운 것 같다. 누군가 월등히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중요한 결정을 내려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각자의 주장을 서로에게 설득하는 과정이 더욱 요구된다. 가고자 하는 방향과 기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있으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경험이 많은 이들이 협업할 때의 이야기다.
경력과 경험이 부족한 주니어의 경우, 협업의 난이도는 배로 올라간다.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코스트가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명확한 업무의 방향과 기준을 설정하는 것과 어떤 아이디어나 주장을 갖고 갈 것인지에 관해 결정할 때도 문제지만, 협업에 대한 자세가 갖춰지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주니어에게 협업능력이 부족한 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범주 바깥의 영역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불신하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의 기본 코딩값은 그렇게 짜여져 있는 걸. 하지만 큰 일을 이루려면 반드시 협업해야 하고, 협업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나는 지극히도 본능에 충실한 개체였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이해할 시간을 쉬이 기다려주지 못했고, 늘 혼자 스프린트하기 바빴다. 팀으로서의 결과물이 내 평가로 이어지는 것이 때론 억울했고 싫었다. 그래서 내가 납득하지 못하는 일의 흐름에 대해 동의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과 나의 차이는 단순히 그들이 나보다 오래, 깊이 고민하지 않고, 능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동시에 가슴 한 켠으로는 나보다 정말로 뛰어난 사람, 나와 대등한 사람과 생각을 섞어가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걸 꿈꾸곤 했다.
이번주에 깨달았다. 나는 지금 내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같은 팀에서 성장하고 있고 나와 수준이 동등한 사람과 협업하고 있음을. 주니어가 반드시 길러야 할 역량 중 하나는 함께 일하는 팀원을 믿고 존중하며, 이들의 사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공동의 결과물을 내는 것임을.
같이 협업하는 팀원 한 명과는 생각하는 방식이나 업무 스타일이 정반대라서 진심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난감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팀원이 하는 말을 더 듣기 위해 노력하고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더 많이 물어본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커뮤니케이션 프로토콜을 만들기도 했다. 중요한 건 서로가 존중하는 에티튜드를 갖춰나가려고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분명 같이 나아가게 된다. 물론 속도는 느리다. 하지만 각자의 생각에 서로의 생각을 얹으면 혼자할 땐 절대 만들 수 없는 결과물이 나온다. 이번주가 그랬다. 그래서 내겐 상당히 인상깊은 한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