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의 회사 임원분으로부터 받았던 인성이 무엇인 것 같으냐는 질문에,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오류 또는 실수를 범하기에 끊임없이 자신을 객관화하고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걸 실행하는 사람은 일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어쩌면 “끊임없이 나를 되돌아보는” 자세는 인생의 전반적인 여정에서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일전부터 만나 뵙고 싶었던 분과 커피챗을 가졌다. 그분께서는 현재 팀을 만들고 계셨고, 같이 일할 인턴을 찾고 계셨다. 신기했던 점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고 계셨다는 점이었다. 큰 목표를 갖고 있고, 다가서기로 결정한 곳에 이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예민한 사람.
성장과 성취, 방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쉽게 대답하지 못햇다. 생각해 본 적 없다기보다 표현하기 어려웠고,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가 겁이 났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내가 정확히 무얼 바라보고 있는지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어릴적부터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되물음을 해왔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등. 깊게 고민하고 답을 내리기 시작한 건 대입을 준비하다가 세월호 사건을 접하면서부터였다. 비애에 찬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되었고, 사람들이 덜 불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순히 덧난 상처 위에 반창고를 붙이는 일이 아닌 상처가 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근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정치와 시사에 관심갖기 시작했고, 대학에선 사회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아, 물론 학문 자체가 잘 맞았던 점이 가장 컸다.
대학을 갓 졸업한 뒤에는 사회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가치 말고도 다양한 가치가 인정받고 감싸 안아지는 세상을 꿈꾼다. 늘 한 가지 뾰족한 문제보다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기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세상에 가치로서 인정받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 과정에 내가 몰입하며 즐길 수 있고 싶었다. 그렇게 법과 정치의 영역으로 비롯되었던 생각이 지금은 나를 사업의 영역으로 이끌고 있다.
그렇다, 이 글은 그분과의 대화에서 미처 다 쏟아내지 못했던 내 심정을 고백하는 글이다. 목표가 어려차례 바뀌는 덕분에 여기까지 돌아서 왔다. 남들보다는 조금 늦게 되었지만 내 코어는 세월호 소식을 들었던 그 순간부터 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은 나만의 뿌리를 그만큼 단단하게 다지는 양분이 되었고, 나만의 관점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결국 여기까지 돌아서 온만큼 나는 더 노력해야 한다. 내가 딛고 있는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과 결정을 통해 빠르게 박차고 올라가야 한다. 노력하는 건 기본이고, 잘할 수 있어야 하고, 현명하게 생각하며 움직여야 한다. 눈앞의 일들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며 집중하되 크게, 멀리 보아야 할 때다.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나의 생각과 뿌리를 더 단단하게 굳혀야 한다. 커피챗이 그러했듯이 내가 접하는 모든 것들이 나로 돌아와 귀결되어야 한다.
인상적이었던 문답
나: D님께서 가장 최근에 받았던 영감은 무엇이었나요?
D: 저는 매일 영감을 받아요. 매일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죠 (그분이 보여주신 캘린더에는 2021년 7월부터 미팅 일정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저는 지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이미 3번의 미팅을 가졌고, 이 뒤에도 3번 더 앞두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체력이 당연히 뒷받침되어야겠죠. 저는 매일 아침에 운동을 해요. 본업도 저한테는 하나의 서브에 불과해요. 저와 같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래요. 이 루틴을 5년 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묻죠, 블로그는 언제 하냐고. 블로그는 주로 쉴 때 해요.
나: 그런데 영감을 받는 건 결과적인 측면 아닌가요? 노력을 했음에도 영감을 받지 못한 경우가 있던 적이 있으셨나요? 영감을 받지 못하셨을 때는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D: 반성하죠. 영감을 받지 못한다는 건 내가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타인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는 건 개인이 얼마나 이 문제에 몰입하고 있고,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의 문제라고 한다 (아마 내가 이야기하는 이마저도 100%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분은 자기 블로그에 쓰시는 생각이 평소 5%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셨다. 사실 그분은 (서브라고 부르시는) 본업도 있으시고, 매일 사람도 많이 만나시면서 글도 쓰시고 공부도 하신다. 여러 가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아주 작은 단위까지 쪼개서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모든 활동에 최대한 집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분은 무언가를 하는 시간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내재화하는 시간이 훨씬 밀도 있는 듯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성장을 이야기하지만 막상 나를 성장으로 이끄는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기는 쉽지 않다. 성장은 대게 고통을 동반한다. 그러한 이유는 아마도 고통이 우리의 온 신경을 사로잡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의 시간은 영겁의 시간이다. 일초가 일분, 한 시간처럼 길고, 감각은 선명하기 마련이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밀도 높은 시간이다. 그런 시간 안에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하는 많은 생각과 시행착오는 고스란히 경험치로 환산된다. 성장은 그렇게 밀도 높은 시간 안에서 이뤄진다.
반대로 두고 보면, 짧은 시간이더라도 높은 밀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평소보다 더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성장을 위한 밑거름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밀도 높은 시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결국은 기본으로 돌아온다. 내 일에 집중하고 몰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