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편이다. 운좋게 헌병 작전반에서 좋은 분들 밑에서 근무했고 고정적인 ‘내 할일’을 하기보다 상황에 맞춰 여러 간부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덕분에 늘 사무실의 전반적인 상황과 분위기를 시야에 두고 급변하는 환경 안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헌데 막상 후임을 뽑을 시기가 되니 고민이 많아졌다. 가르치는 건 둘째치고, 이걸 잘할 것 같은 친구를 식별해 뽑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어떤 덕목, 재능에 베팅을 해야 할까?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했다.
네 가지를 핵심으로 골랐다. 1) 사무실 상황과 분위기를 늘 주시하고, 2) 간부들의 컨디션을 파악하며, 3) 실시간으로 치고 들어오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4) 갑자기 쏟아지는 일을 내 선에서 처리할지 간부에게 넘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 간단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고난도의 소프트 스킬을 요구하는 업무였다. 거기다 군대 특성상 사건사고가 터지기라도 하면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는 경우도 많았다.
고민 끝에 내가 기준으로 삼은 건 ‘배려심’과 ‘공감능력’이었다. 이는 현재 내가 사람을 볼 때도 유효한 기준으로, 나는 이것이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왔다. 메일을 쓸 때나 업무 전화를 받을 때, 심지어는 사소한 메시지를 전달할 때까지 포함해 거의 모든 업무에 요구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은 개인 업무와 팀 업무를 구분짓는 요소다. 동시에 사실 유일한 차이이기도 하여 같이 일하는 사람을 헤아릴 줄 아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배려를 할 줄 안다는 건 늘 타인을 살피며 그들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고, 공감할 줄 안다는 건 타인의 감정을 총체적인 맥락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줄 안다는 뜻이다. 그래서 후임이 특정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판단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할 때면, 나는 항상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봐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내가 이번주에만 “상대방을 생각하라”는 이야기를 두 번이나 들었다. 새 프로젝트에 돌입하면서 큰 파트를 맡게 되었고, 팀은 내 파트에 있어서 내가 팀을 이끌 것을 요구했다. 업무에서 가장 먼저 변화가 생긴 부분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미팅이든 메일이든 명확하고 확실한 의사전달이 이루어져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상대방을 생각하라”는 메시지는 처음에는 팁으로 왔다가 내가 그 말의 의미를 미처 다 소화하지 못한 탓에 피드백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나의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나타났지만 결국 문제의 본질은 세심함에 있었다. 내 메시지를 받을 상대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서 내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좋은 형태로 전달되지 못했다. 미팅을 준비할 때, 이메일을 쓸 때, 말할 때 뿐만 아니라 기획서를 쓸 때나 고스트 덱을 짤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팀의 리드분들은 “두괄식으로 해라” 같은 말씀은 안 하신다. 두괄식이 하나의 법칙이 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두괄식 또한 직장 환경에서 업무를 공유받는 사람들이 두괄 형식을 일반적으로 필요로 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즉, 업무 내용의 전달순서나 형식은 늘 변할 수 있기에 두괄식의 본질은 “상대방을 생각한다”는 세심함에 있다. 그래서 팀장님은 종국에 일을 가장 잘하기로 인정받는 사람은 “메일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피피티를 만들기 위해 사무실에 홀로 남아 날밤을 세웠다, ‘내 메시지를 전달받는 상대방은 누구일까’; ‘내 메시지를 통해 어떤 것을 하려는 걸까’; ‘그 사람이 정말 필요로 하는 건 뭘까.’ 내가 전달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면 혼자 일해야 한다. 하지만 더 좋은 가치,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한다. 그러면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은 필수다. 커뮤니케이션은 팀 단위 일의 시작점이자 핵심이다.